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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최수봉 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 개최나라사랑 실천, 밀양인 자긍심 계승한다
   
▲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최수봉 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 개최

[경남데일리 = 공태경 기자] 7월 8일은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꽃다운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밀양출신 독립운동가 최수봉 의사의 순국일이다.

오는 8일 오전 10시 30분 밀양시 상남면 마산리 소재 최수봉 의사 순국기념비에서는 의열투쟁의 선봉 최수봉 의사 순국 제101주기 추념식이 개최된다.

밀양향토청년회 지도회가 주최·주관하는 이날 추념식에는 기관단체장과 시민 등 150여명이 함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으로 널리 알려진 최수봉 의사는 1894년 3월 3일 밀양군 상남면 마산리에서 출생해 밀양공립보통학교 3학년 재학 시 일본 황실 모독죄를 범한 불온학생으로 퇴학당하고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중학과정인 사립동화학교에 입학해 을강 전홍표 선생으로부터 민족정신과 독립정신을 이어받았다.

이후 학교가 일제의 강압으로 문을 닫게 되자 명정학교로 학적을 옮겨 졸업했다.

1913년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해 3년을 수료하는 사이 조국광복운동의 투지가 거세게 불타올랐으며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이 방방곡곡에서 봇물 터지듯 일어나자 석정 윤세주를 위시한 동지들과 3월 13일 밀양장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왜경에 쫓기는 몸이 되어 남만주 봉천 길림 등지로 피신해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의열단에 가담해 폭탄 제조기술을 익혀 마침내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스스로 자결을 시도했지만, 왜경에 체포돼 이듬해 7월 8일까지 살이 타고 뼈가 깎기는 옥고를 치르면서도 혀를 깨물며 동지들의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다.

사형선고를 받고 대구감옥 교수대에서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세상을 떠났으니 그 나이 28세였다.

정부는 최수봉 의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1969년 서울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했으며 국가보훈처는 2016년 12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최수봉 의사를 선정해 다양한 행사를 펼친 바 있다.


공태경 기자  hcs@k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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